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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네티즌이 쓴 '국민연금의 8가지 비밀'이라는 글로 누적되어 온 가입자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국민연금 반대 움직임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같이 사태가 심각해진 데에는 정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안일한 인식이 일차적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정확한 사실 확인과 이해가 없는 언론 보도가 오히려 사태 해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싶다.

국민연금에 대한 가입자들의 불만은 정부와 연금 제도에 대한 근본적 불신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 연금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들은 또 이같은 불신은 애초에 국민연금제도가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 없이 도입되면서 비롯된 것이 근본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 제대로 된 인식과 분석이 결여된 언론 보도가 오히려 연금제도의 합리적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즉, 이미 우리나라에서 노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제도는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것과 사회적 노령화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에 중요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사태 해결을 꼬이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금고갈=연금파산?'과 같은 보도가 '용돈연금' 전락 부추겨

국민연금제도가 처음 도입된 1988년은 군사독재 시절 아래, 사회적 논의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납부율은 임금의 3%, 지급율은 임금의 70%로 매우 선심성 짙은 기형적인 설계로 국민적 동의를 대신하면서 도입해 버렸다. 이 때문에 정부는 부담은 올리고 급여를 내리는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연금 기금 고갈은 연금 파산'이라며 '이 때문에 부담은 대폭 올라가고 급여가 대폭 깎이는 것이 불가피하며 결국 '용돈연금'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금고갈=연금파산'이라는 잘못된 보도가 오히려 '용돈연금'으로의 전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금고갈=연금파산'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 것은 1995년 참여연대가 연금개혁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다. 당시 참여연대는 정부가 연금기금이 아무런 감시 장치 없이, 어디로 쓰이는지 알 수도 없는 채 운영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기금 운영이 지금과 같이 계속된다면 연금 재정을 불안하게 해 기금 고갈을 앞당길 수 있다'며 이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때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기금고갈'을 '연금파산'으로 '오독'하면서 '연금을 못 받는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근본적 불신이 자리잡게 했다.

이 개혁 운동의 결과로 연금기금의 투명성이 확보되어 큰 성과를 낳았지만 이로서 연금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기는커녕 국민들 속에 연금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자리잡게 된 결과를 빚게 됐다.

이같은 언론의 인식은 이번 사태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연금제도를 오랫동안 운영해 온 국가들의 사례로 볼 때 이 같은 보도는 '오보'일 뿐이다.

즉, 대부분의 나라에서 처음에 연금을 시행할 때에는 우리나라와 같이 젊었을 때 돈을 쌓아 연금 수급 연령이 되면 그 돈으로 지급하는 '적립방식'으로 시작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 기금이 고갈되면 그 동시대 노동자들의 연금을 부과하고 그 동시대 연금 대상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 방식'으로 전환해 연금을 적정한 수준에서 계속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 생활 보장'이라는 본연의 기능에 맞게 적정한 급여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금고갈'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부과 방식'으로의 전환은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 워낙 기형적인 형태로 도입되어서 부담율을 높이고 지급율을 낮추는 것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수준은 향후 '부과 방식'으로 전환시에 충격을 완화하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정도까지만 조정이 되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애초에 '기금 고갈'과 '부과 방식'으로의 전환이 고려되어서 설계된 것도 사실이다.

물론, 기금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기금의 안정성'을 우선하도록 연금을 운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현재의 급여 수준을 대폭 낮추는 것이 불가피해 '국민의 노후 생활 보장'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멀어질 위험성이 크다.

그러나 '기금고갈=연금파산'이라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정부로 하여금 '국민의 노후 생활 보장'보다는 '기금 안정성'에 우선 순위를 두도록 압박하고 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즉, 현재 부담을 높이고 급여를 낮추는 개정은 '부과 방식'으로의 전환을 대비하기 위한 수준까지 이루어지는 것이 합당하나 '연금 파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노후생활 보장 기능'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급여가 낮아지는 개정 방안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또 언론에서 전후 관계를 생략해 버린 채 "국민연금이 '용돈연금'으로 전락한다"고 비판한다.

결국 '기금 고갈로 연금이 파산한다'는 보도로 연금 지급 수준의 대폭 하향 조정을 부추기면서 이에 대해서는 '용돈연금'으로 전락한다면서 대안 없는 비판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수급권 제한 규정에 대한 언론의 잘못된 접근

'국민연금의 8가지 비밀'의 대부분의 내용은 수급권 제한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같은 수급권 제한 규정들은 가입자로 하여금 "내 돈을 떼어 먹으려 한다"고 인식하게 해 현재 연금에 대한 불만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연금 전문가들은 일부 그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유족 연금의 수급권 제한 규정 완화를 비롯, 연금 수급 연령이 되더라도 수입이 있으면 연금 지급이 안되는 규정 역시 일정 금액을 감액하는 방향으로의 개정 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대표적인 부당한 규정의 예로, '맞벌이 부부가 각각 연금을 냈어도 한명이 사망했을 시 나머지 한명에게는 두 연금 중 하나만 선택하게 하는 규정'을 들며 이 규정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봉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는 사회보험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 규정만큼은 '부당한 규정'으로까지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국민연금을 '금융투자상품'과 유사한 성격을 가진 '개인연금'과 같이 생각하면 맞벌이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했을 때 남은 한명에게 한 사람분의 연금만을 선택하게 한 것은 "돈을 떼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지급'한다는 사회 보험의 기본 원칙을 고려하면 남은 사람의 필요가 2배가 되는 것이 아닌 한 이 규정에 큰 무리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회보험, 예를 들면 의료보험은 '질병 사고로 인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필요'가 발생할 때, 고용보험은 '직장에서 해고 당해 소득이 중단되었다는 필요'가 발생할 때 급여를 받는다. 이것처럼 국민연금 역시 '나이가 들어 소득이 중단되었다는 필요'에 의해 급여가 결정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개인연금은 가입자가 납부한 돈을 보험사가 운영해 수익을 얻은 다음 그 나머지를 연금으로 지급하는 원리로, 최초 가입시 향후 지급액으로 약속한 절대액이 2~30년 후에 물가인상에 따라 가치가 절반이하로 떨어져 '노후생활 보장의 필요'에 충족되지 않더라도 약속한 금액만 주어도 아무 문제가 없어 '수급권 제한 규정'을 엄격히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 '필요'를 기준으로 해야함으로 물가인상분까지 모두 반영하면서 통상 내는 돈 보다 받는 돈이 많아지므로 '수급권 제한 규정'이 개인연금보다 까다로와질 수밖에 없는 사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을 개인연금과 단순 비교 하는 것은 애초부터 성립이 잘 안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필요'를 기준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가장의 사망으로 유족에게 발생한 '필요'에 따라 연금을 적정하게 지급해 주고, 연금 수급 연령이 된 사람이 일정 소득이 있더라도 그 소득이 '필요'에 충분치 않을 경우 적정한 수준에서 연금이 지급되도록 연금을 개혁하는 것은 합당하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 중 한명이 사망해도 남은 한명이 연금을 받고 있다면 필요가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므로 연금을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부당한 규정'으로까지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연금을 시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이와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국가에 따라서는 '유족연금'의 명목으로 일부를 더 급여해 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폐지'는 답이 아니다

국민연금제도는 국민적 합의가 결여된 채 도입이 된 만큼 적지 않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제도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합리적 개혁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출산율 저하로 인해 국민연금은 계속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고, 따라서 부과 방식으로 전환되더라도 노령화의 대책으로 기능하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적립된 기금으로 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 또 OECD에서 가장 안정성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 연금기금을 이용해 보육 시설의 대폭 확충 등 출산율 저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되는 초기 비용을 조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오히려 연금제도를 잘 이용하면 어떤 나라보다도 노령화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차피 출산율 저하는 연금 문제가 아니더라도 경제적 측면에서 국가적 차원의 적극적 대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만약 출산율 저하 문제에 대해 적극적 대응은 하지 않으면서 국민연금마저 폐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노동력 감소로 생산력은 저하하면서, 날로 증가하는 노인 인구의 소비 능력 감소로 내수시장까지 침체돼, 성장 잠재력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출산율 저하를 이유로 연금제도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이 같은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연금제도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오히려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합리적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고 연금제도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한 부분이다.

물론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국민연금을 폐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서강대 문진영 교수는 "국민연금 최대 적립금이 1000조에 이르는 등 그 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이 시장을 노리는 세력이 적극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연금제도 존립 자체에 대한 실제적 위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 재벌측의 싱크 탱크 역할을 하는 한 경제연구기관에서 '연금제도 폐지'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국민연금, 세계적으로 입증된 가장 유력한 노령화 대책

국민연금제도는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입증되어 온 가장 유력한 노령화 대책으로 노령화가 심화될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대부분 국민들의 이해 관계가 걸린 만큼 국민연금이 국민의 원성의 대상이 아닌 노후 생활의 든든한 방패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어떤 사안보다도 중요하다.

동시에 국민연금 개혁은 국민연금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서만이 합당한 개혁 방향이 나올 수 있다. 국민들 역시 이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 할 수 있어야 국민적 불만의 해소와 노후 생활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일부 언론들의 행태가 시정되지 않는 한 국민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하고 국민연금은 그 해법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언론이 자신의 사회적 책무를 명심하고 책임 있는 보도 태도를 가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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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지역및복지행정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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